주보성인

성인명 :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Paul)
축  일 :  9월 20일
신  분 :  신학생, 평신도 지도자,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생몰연도 :  1795-1839년

정하상은 남인 양반의 후예로 경기도 양근 마현(마재)에서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훌륭한 순교자 중의 한 분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후 서울로 이사하여 살았으나 7세 때인 1801년에 신유박해로 아버지와 형인 정철상(가롤로)이 하느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하였고 가산마저 몰수당하게 되어 어머니 유소사(체칠리아) 와 동생 정혜(엘리사벳)와 함께 정하상은 고향으로 돌아와 살게 되었다. 천주교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가문이 풍지박산이 났다. 더구나 그의 숙부인 정약용(요한)에게 의지하였으나, 숙부가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 가 있던 때였으므로 외교인 친척들로부터 천대와 냉대를 받기도 하였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어머니 유체칠리아는 아들과 딸의 신앙심을 키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의 순교, 어머니의 신앙교육은 정하상이 일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투신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청년이 된 후 학문과 교리탐구에 열중하였으며 외교인들 틈바구니 속에서는 신자의 본분을 지키기가 어려워 20세 때에 서울로 올라와 조증이(바르바라)의 집에 머물면서 목자 없는 조선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회 재건을 모색하였다. 그는 함경도에 귀양 가 있던 한학자 조동섬(유스티노)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기도 하였다. 이후 성직자 없는 교회를 재건하기 위하여 엄동설한에 노비의 역무를 맡으면서까지 왕복 5천리 길인 북경을 아홉 차례나 왕래하며 북경주교에게 한국교회에 성직자를 파견해 줄 것을 직접 호소하였다. 정하상은 유진길, 조신철 그리고 강진에 유배 중인 삼촌 정약용의 자문과 후원으로 끊임없이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여 마침내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되었다. 그들은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 등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되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은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교회는 단일 교구로서 한 분의 주교와 두 분의 사제가 조선에 파견되었다.
그리하여 박해로 흩어졌던 신자들은 다시 모이고, 복음의 시앗이 조선 곳곳에 뿌려지기 시작하였다. 정하상의 덕행과 지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을 보고 앵베르 범주교는 그를 신학생으로 발탁하여 라틴어와 신학 공부까지 시켰으나 박해로 말미암아 신품을 받는데는 이르지 못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주교를 피신시키고 순교의 때를 기다렸다. 그때를 대비하여 그는“상재상서”(上宰上書)를 작성했는데, 이것은 조선교회 최초의 호교서이다. 그는 이 속에 박해의 부당성을 뛰어난 문장으로 논박했기 때문에 조정에서까지 이 글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839년 7월 11일, 정하상은 모친 유체칠리아와 동생 정혜와 함께 체포되었고 이튿날부터 극심한 문초를 받게 되었다. 정하상은 무서운 고통을 강인하게 이겨냈고 배교하라고는 엄명을 용감히 거절하였다. 며칠 뒤에 다시 끌려나와 톱질 형을 받아 살이 떨어져 나가고 골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온갖 고통 중에도 뜨거운 신앙과 교회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다가 마침내 1839년 9월 22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45세를 일기로 참수 순교하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상재상서”(上宰上書)는 3600여 자의 짤막한 글이지만 조선의 당쟁과 정권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세도파들의 희생제물로 천주교가 박해 박아야 했던 시대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천주교의 ‘불비’(不非)함을 주장하였던 것으로 선대(先代)의 유학자들이 비판, 언급하였던 천주교에 대한 비판의 글(벽사위정론 壁邪衛正論)에 대하여 종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 불교의 교의적 동일성을 반박하고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기 때문에, 상재상서는 19세기 중반의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적 열정을 이해하는 데뿐만 아니라 천주교 교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상재상서는 한국교회가 북경으로부터 천주교 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수용을 통한 주체성의 정립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조선사회에 천주교 신앙의 토착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상재상서를 읽음으로써 신앙의 선조들을 본받아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굳세어졌으면 한다. 또한 성 가정의 모범을 충실히 본받은 정하상의 가정을 통하여 가정 공동체의 중요성, 즉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신앙생활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를 바란다.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자발적으로 찾아 공경하기 시작한 자랑스런 교회이다. 현재까지 103위의 순교 성인을 모신, 순교의 전통 위에 굳건히 세워진 한국천주교회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우리는 103위의 성인 가운데,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를 호칭하고 있고, 평신도들의 모범으로는 성 정하상 바오로를 부르며 기도하고 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자신 후 40일 만인 10월 26일에 미리내에 안정하여 모시고 있고,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천진암에 모셔져 있다. 이 외에도 정하상 성인의 아버지 정약종(아우구스티노)과 고모부인 이승훈(베드로), 큰 어머니의 바로 아래 남동생 이벽(세례자요한), 어머니 유소사(체칠리아) 성녀의 외가쪽 친척이 되는 권철신, 권일신, 정하상 성인의 삼촌인 정약전(바오로), 할아버지 정재원, 증조할아버지 정지해, 큰어머니이면서 이벽(세례자요한)의 누님이며 황사영(알렉산델)의 장모가 되는 경주이씨 등 정하상 성인의 가족들 대부분이 모셔져 있다. 정하상 성인의 집안 식구는 모두 다섯인데, 모두가 순교자이다. 아버지와 정약종과 형 정철상은 1801년 신유년에 순교하였고, 정하상 자신과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1839년 기해박해 때에 순교하였다.

PAUL CHUNG HASANG

Memorial : 20 September
Born : 1795
Died : martyred on 22 September 1839
Beatified : 6 June 1925
Canonized : 6 May 1984 by Pope John Paul II
Profile :
Son of Yak Jong Chung who was martyred in 1801 in the persecution of Shin-Yu, an attack on the faith that killed all the clergy in the country. Son of Saint Yu Cecilia; brother of Saint Jung Hye. Paul, though a layman, reunited the scattered Christians, and encouraged them to keep their faith and live their faith. Wrote the Sang-Jae-Sang-Seo which explained to the Korean government why the Church was no threat to them. He crossed into China nine times, working as a servant to the Korean diplomatic corps. Once he was there, he worked to get the bishop of Beijing to send more priests to Korea. He pleaded directly to Rome for help, and on 9 September 1831, Pope Gregory X proclaimed the validity of the Korean Catholic diocese. When the clergy began to return, Paul entered the seminary. However, he died in the Gi Hye persecution of 1839 before he could be ordained. One of the great founders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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